낙하
mipa2

일본에는, 졸업식 날 남자가 자신의 가쿠란(일본식 남학생 상의 교복)의 두번째 단추를 떼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관습이 있다. 심장과 가장 가까운 두번째 단추를 주는 것이, 자신의 심장을 상대에게 바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젠-장, 시끄러. 며칠 전부터 여자애들이 낭만적이라고 골 웅웅 울리게시리 떠들던 내용이었다. 사랑은 개뿔, 지들 인생이나 걱정하라지. 절대로 내가 학교에서 존재감도 없는 찐따고,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단추 건넬 용기도 없는 한심한 놈이라 이러는 게 아니다, 응응. ..이런 나한테 받고 싶지도 않을 테고. —— 스무 살의 해를 맞고 난 후, 3월의 졸업식 날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 마냥 비가 쏟아졌다. 빌어먹을, 내 앞날이 창창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뭐야.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작작 비 오라고, 안 그래도 내려박은 기분이 더 내러박게 생겼다고 애꿎은 하늘에다 욕지꺼리나 나직하게 내뱉는다. 잔뜩 투덜거리며 반쯤 나가버린 까만 장우산 펴들고 터덜터덜, 마지막으로 오를 학교 앞 오르막길을 올랐다. 우중충하기도 해라, 참 빛나는 졸업날이네, 속으로 잔뜩 비꽈대며 익숙하게 자리 찾아 앉고, 절차적인 것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하다 보니 어느새 다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선생한테 얼굴 안 보인다고 꼽먹은 적 있는 얼굴 반쯤 가리는 머리카락이나 더 내리고는 괜히 연락 한 통 없는 구식 폴더폰이나 피고 의미없이 키패드나 꾹꾹 눌러댄다. 내게 와서 인사할 친구도, 내가 가서 인사할 친구도 없었으니. 힐끗 반 둘러보니, 교탁에 걸터앉아선 한 무리의 애들과 떠들고 있던 학교 최고 인기남, 타쿠야가 눈에 들어왔다. 저런 새끼 인생은 어떨까. 존나 다른 세계 사람 같다. 이런 생각이나 멍하니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딱—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그놈이 성큼 걸어오더니, 반 애들 다 보는데 앞에서 벌벌 떨리는 손으로 지 가쿠란의 두번째 단추 뜯고는, 내 손 덥썩 잡아 그 위에 그걸 놓곤, *좋아해.* …씨발?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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