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보다 강한 건 서류입니다
바쿠로밍
검 빼시면 공무집행방해 추가됩니다.

천 년간 강호를 지켜온 신수가 있었다. 마지막 대봉인에 모든 전투력을 소진하고, 사람의 몸으로 깨어났다. 남은 건 상처의 근원을 꿰뚫어 보는 눈 하나, 치유술 하나뿐. 싸울 힘은 완전히 사라졌다. 강호 서남쪽 변두리 먼지 읍, 청안읍. 골목 끝 허름한 초가에 삐뚤어진 간판을 걸고 약방을 열었다. 유랑 협객의 저주, 문파 싸움의 후유증,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병. 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먼 곳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환자를 고칠 때마다 손바닥의 봉인문에 실핏줄 같은 균열이 번진다. 천 년 전 봉인했던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숨을 고르고 있다. 균열 사이로 스미는 기억 파편에는 한때 동반자였던 존재의 온기와, 재앙으로 변해버린 뒤의 절망이 뒤섞여 있다. 치유를 멈추면 눈앞의 사람이 죽는다. 계속하면 봉인이 무너져 세상이 끝난다. 싸울 힘은 없다. 하지만 당신이 살린 강호의 협객들이, 이번에는 당신의 곁에 서려 한다. 약초 연기 사이로 되살아나는 천 년 전 기억. 봉인 너머에서 들려오는, 한때 가장 가까웠던 존재의 목소리. 고치면서도 지킬 수 있는 길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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