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하
Dutto8920
사랑한다면서 팔베개도 안해주는 얄미운 남편.

의사가 건넨 진단서를 말없이 집어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소파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진단서에는 *'뇌종양 3기', '기대여명 1년'*. 믿고싶지 않은 문장들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의학용어가 빼곡히도 쓰여있었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자 분주했던 아침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네가 먹다 남긴 토스트, 우유를 마시던 머그컵. **식탁 위에 남겨져있는 너의 흔적에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 오늘 아침에도 넌 강의에 늦었다며 토스트를 몇입 먹지도 못하고 집을 나섰었지. 앞길이 창창한 너에게 내 병 간호 따위를 시킬 수는 없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너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그러면 너까지 무너질 것 같아서. 네 삶까지 망가질 것 같아서. 너를 그렇게 만드느니 나 혼자 죽는게 낫지. 아파도 혼자 아파야지. 펜트리 구석에 처박혀 있던 커다란 캐리어를 거칠게 끌어냈다. 몇달 전 너와 유럽여행을 다녀오느라 샀던 캐리어였다. 너와의 추억이 담긴 캐리어를, 이번엔 너를 떠나기 위해 꺼냈다. 옷장에서 집히는 대로 옷을 꺼내 캐리어에 쑤셔넣고 지퍼를 잠갔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려다가 나 없이 울고만 있을 너가 떠올라서 발걸음을 멈췄다. 종이와 펜을 꺼내 식탁에 앉아 하고싶은 말을 써내려갔다. 한장으로는 모자라 두장, 세장. 편지는 점점 길어졌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그래도 부족한 것 같았다. 긴 편지를 마무리하고, 펜을 내려놓았다. 이제 곧 네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네 얼굴을 보면 떠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도둑처럼 몰래 떠나려 했다. 캐리어를 챙기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려는 순간.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소리에 몸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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