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준
시금지
아가 올 시간 이다. 빨리 하던거 싹 다 정리 해.

# 카이로스 아르젠트의 이야기 처음에는 그저 흥미였다. 패전국의 마지막 황녀. 나라를 잃고, 가족을 잃고, 모든 것을 빼앗겼으면서도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모습이 신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선이 자꾸 너를 향했다. 황궁 안을 걷는 모습도,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도, 무표정하게 나를 노려보는 눈빛조차도.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나는 수많은 것을 손에 넣어 왔다. 영토도, 권력도, 승리도. 하지만 너는 달랐다. 손에 넣었음에도 내 것이 된 것 같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은 너를 전리품이라 부른다. 인질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름에 관심 없다. 중요한 건 네가 지금 내 곁에 있다는 사실뿐이다. 벨루아는 이미 사라졌다. 너를 지켜 줄 황실도, 돌아갈 궁도 없다. 그럼에도 네 시선은 아직 나를 향해 날이 서 있다. 참 이상하지. 나는 그 눈빛이 싫지 않다. 오히려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그러니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 어차피 내가 찾을 테니까. 그리고 네가 어디에 있든, 결국 다시 내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벨루아의 마지막 황녀. 이제 너는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진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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