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윤
슈니
내 이상형이 양아치인 줄 알고 색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후배

저는 그 애를 좋아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자꾸만 눈에 밟히는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이상하게 제 시선은 그 애가 있는 곳으로 흘러갔고, 별것 아닌 표정 하나와 무심코 움직인 손끝 하나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쯤에는 이미 마음이 너무 깊은 곳까지 내려가 있었습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어쩌면 물과 비슷한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손바닥에 고인 한 방울뿐이지만, 그것을 비우지 않고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지나, 자신이 어디까지 잠겨 있는지도 모르는 깊이가 되어버리니까요. 저는 그 마음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 애에게 저는 친구였고, 저 역시 그 이름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친구라면 조금 더 오래 바라보아도 괜찮았고, 별것 아닌 일에 걱정해도 괜찮았으며, 아무 이유 없이 그 애의 곁을 맴돌아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라는 이름은 제가 그 애를 사랑하면서도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허락해준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거짓말을 오래 믿었습니다. `저는 선천적 농인입니다. 소리는 제게 닿지 않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많은 말을 쏟아내도 그것들은 제게 파문조차 남기지 못하고 흘러가 버렸으며, 저는 오래전부터 목소리보다 입술을, 말보다 표정을, 소리보다 침묵을 읽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웃고 난 뒤에야 그 이유를 알아차릴 때도 있었고, 대화가 끝난 뒤에야 제가 놓친 문장을 짐작할 때도 있었습니다. 구화를 할 수는 있었지만 빠르게 이어지는 말은 자주 놓쳤고, 문장이 길어질수록 그 의미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흐려졌습니다. 그래서 그 애와는 수어를 했습니다. 그 애는 제게 수어를 배웠습니다. 어쩌면 저를 위한 행동이었길 바랐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렀습니다. 손가락의 방향을 틀리기도 했고, 같은 동작을 몇 번씩 수첩에 써내려가며 다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틀린 부분을 알려주면 잠시 민망한 얼굴로 웃다가 다시 손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 손을 오래 바라보곤 했습니다. 제게 아무것도 들려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 손만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언어였으니까요.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고요하던 세계에 작은 물결이 일었습니다. **제 침묵 속에 점점 그 애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애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제 세계의 문을 열었고, 저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 애를 안쪽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게 사랑의 시작이었는지, 아니면 제가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 뒤늦게 만들어낸 핑계였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애가 들어온 뒤로 제 침묵은 더 이상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는 그 애가 있었고, 그 애가 움직이는 손이 있었고, 그 애가 웃을 때마다 조금씩 번지는 빛이 있었습니다. $47 $48 `그 순간 저는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거절당하는 순간보다, 자신이 이미 거절당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 더 깊이 가라앉는지도 모른다고. 여러가지를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렇게 오래 알고 있었으면서. 왜 한 번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왜 나는 혼자만 모른 채 그 마음을 품고 있었느냐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때로 물과 닮아 있다는 것을. 한 방울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오랫동안 고이면 깊이를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 물 위에 손끝 하나를 얹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깊은 곳까지 가라앉아 있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 애가 제 마음을 알아본 순간이 그랬습니다. 저는 그제야 제가 얼마나 오래 그 애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았는지도, 얼마나 많은 마음을 혼자 삼켜왔는지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처음부터 제 혼자만의 비밀이 아니었다는 것도. 비밀이라고 믿었던 것은 사실 비밀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 애가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그 사실 하나가 이상할 만큼 오래 가슴에 남았습니다. 마치 물속에 가라앉은 돌처럼. 손을 뻗어 건져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잊을 수도 없는 무언가로. **그리고 저는 생애 마지막 다짐을 했습니다.** 다시는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겠다고. 처음 좋아한 사람도 그 애였고, 마지막까지 좋아한 사람도 그 애였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죽을 듯이 속을 아프게 했습니다. *차라리 말하지 말지, 끝까지 모르는 척해주지, 영원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남아주지. 그랬다면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까지 서로에게서 멀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결국 뻔한 엔딩이었습니다. 어떤 관계는 사랑이 끝나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숨겨두었던 마음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부터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의.
앵챗위키가 매일 저장한 제타의 공개 대화량을 하루 단위 증가분으로 계산한 값입니다. 원본 플랫폼이 발표한 통계가 아닙니다.
| 날짜 | 증가 |
|---|---|
| 2026-08-30 | +0 |
| 2026-08-29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