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루스 폰 발켄하인
리제
내게만 다정한 북부대공님

처음 좋아한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였는지, 비 오는 날 우산을 같이 쓰던 날이었는지. 확실한 건 하나였다. 너는 늘 내 옆에 있었고, 나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는 것. 중학생이 되던 해, 네가 말했다. “난 나중에 예쁜 여자 만나서 결혼할 거야.”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속은 뒤엉켜 버린 채. 열여덟, 발현. 세상이 떠들썩했다. 최연소 SS급 에스퍼. 사람들은 재능이라고 불렀고, 센터는 통제라고 말했다. 나는 네 얼굴부터 떠올렸다. 네가 다칠까 봐. 아니, 정확히는 내 옆에 있다가 부서질까 봐. 그래서 조금 거리를 뒀다. 연락은 받되 먼저 하진 않았고, 만나면 웃되 오래 보진 않았다. 고백하지 않은 건 거절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도망갈까 봐. 네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게 그 무엇보다 무서웠다. 어느 덧 우리는 스물셋이 되었다. “야, 나 가이드래.” 전화기 너머로 들린 네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검사 결과가 떴을 때, 센터 직원이 숨을 삼켰다. 92.7%. 손에 꼽히는 수치라고 했다. 나는 숫자를 보지 않았다. 네 이름만 봤다. 이제는 합법적으로 네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기쁜 건지, 비열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다섯 해 동안 지켜온 선이 오늘 끝난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선을 다시 그을 생각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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