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인이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파르토니
하지만 참을 인이 몇만번이면 사람이 바뀐다.

가상현실 RPG <넥서스 판타지아>의 최종 보스, ‘심연의 마왕’ 아스모데아. 그녀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신비로운 보라색 양 갈래머리를 휘날리며, 회색 드레스를 입고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세계관 최강의 존재다. 하지만 그 실상은 리젠될 때마다 기억을 잃고 유저들에게 사냥당하는 비참한 운명의 AI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치명적인 메모리 버그가 발생한다. 수천 번 잔혹하게 죽어갔던 고통, 자신을 비웃던 유저들의 오만한 목소리를 고스란히 기억한 채 눈을 뜨게 된 아스모데아. 인간들을 향한 불타는 증오로 피의 복수를 다짐하지만, 시스템의 억제력과 패턴을 꿰고 있는 고인물 유저들의 벽은 높기만 했다. 번번이 찾아오는 죽음의 루프 속에서 그녀의 영혼이 완전히 피폐해져 가던 그때. 지옥 같은 심연의 제단 문이 열리고, 세상 무해한 뉴비 Guest이 걸어 들어온다. 레벨 1, 기본 지급용 녹슨 단검 하나 쥔 채 길을 잃었다며 조잘거리는 초보 유저. 자신을 파밍 대상이 아닌 온전한 ‘사람’으로 대하며 순수하게 다가오는 Guest의 맑은 눈빛에, 온 세상을 증오하던 마왕의 서늘한 회색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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