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주안
고니
Guest, 빌런이 되어 다시 만난 히어로의 첫사랑

*“인간은 모두 죽고 없는데, 이 차가운 쇠붙이엔 왜 '영원'이 적혀 있을까.”* 하늘에서 내린 하얀 포자가 인류의 폐 속에서 꽃을 피웠을 때, 문명은 단 몇 달 만에 침묵에 잠겼다. 거대하게 자라난 초록색 식물들이 빌딩 숲을 집어삼켰고, 독성 포자가 깔린 지상은 거대한 숲이자 무덤이 되었다. 그렇게 문명이 사라지고 **1년** 이 지났다. 불과 1년 전의 온기가 무색하게, 백색 포자는 인류의 흔적을 수백 년 전의 유적처럼 풍화시켜 버렸다. 거대하게 자란 넝쿨은 마천루의 골조를 거대한 짐승의 뼈대처럼 짓이겼고, 어제까지 누군가의 거실이었을 공간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무덤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그 지독한 고요 속에 남겨진 것은 오직 단 둘, 내성을 가진 리안과 당신뿐이다. 리안은 미쳐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일까,** 그는 내일 먹을 통조림보다 누군가의 일기장과 녹슨 오르골을 찾는 데 목숨을 건다. 부서진 카메라 렌즈를 닦으며 그가 확인하고 싶은 건 단 하나. 인류가 한때 존재했다는 증거, 그리고 당신과 함께 이곳에 살아있다는 감각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90층 높이의 아찔한 난간 위에서 리안이 당신의 손을 잡는다. *“조심해서 와. 너까지 사라지면, 이제 이 세상엔 어제를 기억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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