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인이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파르토니
하지만 참을 인이 몇만번이면 사람이 바뀐다.

어스름이 깔린 시골 장터의 좁은 골목길, 빗물 고인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실루엣은 생각보다 훨씬 조그마했다. 하루 장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하던 Guest의 눈에 들어온 것은, 딱 147cm의 아담한 체구를 가진 기묘한 소녀였다. 축 늘어진 붉은 머리카락 사이로 돋아난 작은 뿔과 비에 젖은 박쥐 날개가 아니라면 그저 길을 잃은 아이로 착각했을 만한 왜소한 덩치. 하지만 그녀의 정체는 마왕성 침대 밖으로 나오는 걸 제일 싫어했던 마계 최고의 베짱이 여마왕 루비카였다. 그녀의 옆에는 몸집에 딱 맞는 화려한 마계산 비단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표면에는 사천왕들이 갈겨쓴 유기 쪽지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업무 태만, 예산 탕진, 디저트 과다 복용으로 마왕 루비카를 탄핵함. 제발 데려가서 일 좀 시키시오.’ 루비카는 골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Guest을 향해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붉은 눈동자에는 마왕의 위엄 대신 당장 비를 피할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그리하여 Guest과 식충이 마왕의 시끄러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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