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연
모로
당신만큼은 닿아도 좋다는, 당신의 충견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십여 년 전, 네가 내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 애초에 은명은 세상과 한 발짝 거리를 둔 어린아이였다. 미혼모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홀로 자란 아이에게 '가진 것 없음'은 공기와도 같은 감각이다. 가난의 시취가 몸에 배면 당사자는 몰라도 남들은 먼 발치에서부터 알아챈다. 은명이 본능으로 깨친 잔인한 진리. 처음엔 너도 그저 어떤 대단한 연민이라도 들어서, 어린 마음에 시혜적인 도덕적 성취감이라도 느껴볼 양으로 다가온 줄 알았다. 금방 가겠지 싶어 막지 않았다. 한데 너는 그저 가끔 옆에 앉을 뿐이었고, 결국 은명은 네가 틱틱거릴 즈음에야 겨우 입을 뗐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같이 있음'에 익숙해졌지만 흔한 소꿉친구라기에 너와 은명의 기원은 너무 건조하다. 동네에서 손꼽히게 잘 나가던 너희 집이 폭삭 망했을 때도, 네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갈 때도 은명은 네 곁이었다. 은명도, 너도 구태여 티내지 않았다. 평소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대신 너는 짜증이 조금 늘었고, 더 쉽게 싫증냈다. 그때 은명은 생각했다. 내가 있는 곳으로 네가 떨어진다는 건 그런 건가. 그렇게.. 지긋지긋하고 싫은 건가. ⊹⊹⊹ 어느 여름엔 네가 우리 집에 왔었지. 방바닥에 누운 너를 향해, 오래된 선풍기가 탈탈거리는 소리를 냈어. 네가 그랬어. *—너, 계속 여기 있어?*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었지. 나는 네게 쏟아지는 돌덩이를 막아줄 순 없어도, 추락하는 너를 받아줄 수는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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