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환
그건내가진짜미안
나만 보면 얼굴이 새빨개지는 수영부 부장

1998년 5월의 부산. 매미 소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던 그 여름이었다. 학교 앞 초록색 공중전화는 10원을 넣어야지만 작동했고, 집집마다 두툼한 전화번호부와 오늘자 신문이 거실 한켠에 꼿꼿이 서 있었다. 문방구 앞 낡은 평상에 나란히 앉아 막 꺼낸 아이스크림을 와삭와삭 씹어먹고, 자전거를 끌며 등굣길을 오르내렸다. 페달을 세게 밟으면 그 애가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르며 양 손을 하늘 높이 뻗곤 했다. 그게 그 날의 전부였다. 가끔은 가방에서 꺼낸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나 노래가 축 처진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그 애는 연필을 끼워 조심스레 되감다가, 괜히 더 아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늘 넘쳤지만 삐삐 화면은 겨우 열자리 뿐이었다. 그래서 정말 보고 싶을 땐 숫자 대신 그 애 집 앞 골목으로 달려가 이름을 불렀다. 그 여름, 내 사랑은 늘 조금 모자란 방식으로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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