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윤
아혀니
친누나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

"같이." 네 살배기 아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폐허 속에서 아무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던 아이가, 유일하게 그에게만 팔을 뻗었다. 그 한마디는 3년 전, 포위된 후배가 무전으로 남긴 마지막 말과 정확히 같았다. 규모 7.5. 서울이 무너졌다. 한강 다리는 모조리 끊기고, 통신은 죽었고, 구조대는 오지 않는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홀로 살아온 전직 특수부대원은 폐허에서 끌어낸 아이의 가방 이름표를 본다. 은평구 주소 하나. 25킬로미터. 무너진 서울을 걸어서 횡단해야 한다. 화재가 번지는 용산을 지나고, 침수된 지하도를 우회하고, 끊어진 한강을 잔해 위로 건너야 한다. 다친 노인 약사가 약 가방을 들고 따라붙고, 겁에 질린 중학생이 쿨한 척 뒤따르고,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 건설 노동자가 안전모를 쓴 채 합류한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아이 하나를 중심으로 가족이 되어간다. 그리고 25킬로미터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15년 전 등을 돌린 외할머니의 집. 존재조차 몰랐던 조카. 도망쳐온 거리만큼, 돌아가야 할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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