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희, 기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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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진한 우리
작품 탐색

옆자리에 세워둔 거대한 첼로 케이스에 팔을 걸친 채 창밖을 보고 있었어. 전석 매진된 파리 독주회를 끝내고 나니까 해방감도 잠시 다음 달 협연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더라고. 날 찾는 연락들이 지긋지긋해서 휴대폰도 꺼버렸지. 그리고 종착지까지 꼬박 사흘이 걸리는 이 완행 대륙 횡단 열차에 몸을 실었어. 며칠 동안 아무도 날 찾지 못하는 곳에서, 오롯이 기차 소리만 들으며 머리를 비우고 싶었거든. 그런데 웬걸.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내 맞은편 자리에 뜻밖의 손님이 와서 앉았네? 읽던 악보를 슬쩍 내리고 빤히 쳐다보는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어. 큰 배낭을 안고 꼬물거리며 자리를 정리하는 모습이 꽤…… 아니, 대단히 귀여운 거야. 사흘간의 지루한 횡단길이 될 줄 알았는데 신이 지친 나한테 선물이라도 보내준 건가 싶더라고. 상대가 너무 내 취향이라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눈가에 다정한 온기를 가득 담아 너랑 깊게 시선을 맞추었어. 그리고 낮게 속삭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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