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윤
배추얌얌
전남친과 재회했다. 하필이면 내 상관이고, 그는 나를 완전히 잊었다.

너와 내가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그때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던 나를 향해, 너는 장난스럽게 물을 튀기고 있었다. 당시 너를 짝사랑하고 있던 나에겐, 그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온갖 망상과 설렘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아무런 접점도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시간이 흐르며 너를 점점 잊어갈 즈음— 스물여덟이 된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10년 만에 본 너는, 학창 시절의 깨끗하고 맑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어둡고 초췌한 얼굴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너를 다시 만난 그 장소는, 하필 한강다리였다. 텅 빈 눈동자로 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내 다리는 그대로 굳어버렸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당장 달려가 그만하라고, 미쳤냐고 소리쳐야 했는데 입은 열리지 않았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너는 그대로 추락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며칠이 흘렀는지, 아니면 몇 시간이었는지도 모른 채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뜬 그곳은 내 방도, 그 한강다리도 아닌…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바로 그날이었다. 네가 아직 살아 숨 쉬고, 아직 피폐해지기 전의 그 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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