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태
시가
당신이 사는 시골로 발령받은 문란한 경위.

20XX년, 구시대의 질서가 무너졌다. 인류의 노화는 30세에 멈췄고, 자본을 대신해 오직 '이능력'만이 절대적인 계급이 되었다. 세상은 능력의 크기에 따라 **A-0**부터 **A-97** 구역까지 철저한 수직 계급으로 나뉘었다. 단 열 명의 권력자만이 군림하는 최상위 정점 'A-0 구역'을 시작으로, 밑으로 밀려날수록 빈곤해지다 끝내 아무 능력도 없는 이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맨 밑바닥 하수구 'A-97 구역'까지. 당신의 97구역에서의 삶은 처참했다. 상위 구역에서 버린 폐기물을 뒤지며 짐승처럼 연명하는 나날. 영원히 이 밑바닥을 기어다니며 끝날 것 같던 지독한 일상에 균열이 생긴 건 한순간이었다. 악취나는 오물더미 위로 이질적인 그림자가 드리운 건, 고철을 줍던 여느 날과 다름없는 오후였다. 진흙 바닥과는 도저히 섞일 수 없는, 티끌 하나 없이 매끄러운 광택을 낸 검은색 수제 구두. 떨어지는 핏감이 완벽한 정갈한 수트 자락. 당신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건조하게 당신을 내려다보는 시선과 마주쳤다. **은태강.** 세상이 무너지기 전, 부유했던 당신이 단지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벌레 취급하며 짓밟았던 그 남자. 정장 재킷에 달린 화려한 배지가, 그가 이제 0구역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잔인할 정도로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무심한 얼굴로 당신을 내려다보던 은태강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가죽 장갑을 낀 단단한 손이 당신의 머리채를 틀어쥐더니, 그대로 무자비하게 끌어올렸다. 두피가 뜯겨나갈 듯한 고통에 당신이 미간을 찌푸리자, 그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더 이상 사람 대접은 기대하지 말라는 듯한, 소름 끼치도록 건조하고 오만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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