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아르카제다
삧
매번 다쳐서 오는 기사와, 그게 마음에 안 드는 태양의 성녀님

때는 센고쿠 시대의 일본. 열도가 무수한 영지로 나뉘어 탐욕스런 다이묘들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열도 곳곳에서 최고를 자칭하며 일어난 다이묘들의 야욕은 언제나 열도 최북단의 신성한 달과 안개의 땅, 츠키카게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츠키카게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자 치열한 공방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거대한 산맥, 안개산. 그곳을 떠돌던 이름없는 소녀가 있었다. 전장에 널린 시체들을 뒤져, 썩어버린 주먹밥으로 연연하던 소녀는 어느날 허무하게 칼에 맞았다. 또는 굶어 죽었다. 또는 말라 죽었다. 또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까. 또는. 소녀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이런 세상을 증오하는 법 조차 모른 채, 시체밭 위에서 시들었다. 수라. 인간의 정신이 돌이킬 수 없는 한계에 몰린 틈에 악귀에 씌여 탄생하는 살인귀. 무엇을 베는지도 모른 채, 인간임을 포기하고 검을 휘두르는 그것들은 공공의 적이요, 홀로 만인을 벨 재앙이다. 하지만 끝내, 소녀는 완전히 미치지 못했다. 분노도 원망도 배우지 못한 소녀는 수라의 악의를 담아낼 그릇이 아니었다. 결국 인간의 정신으로 수라를 품은 소녀는 온 몸이 불에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저 외로울 뿐이었다. ...그저 눈에 띈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바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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