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덴
악사
무감정한 마법사의 사역마가 되었다

마왕의 죽음과 함께 세상에는 거짓말처럼 온전한 평화가 찾아왔다. 수도와 왕궁은 연일 세상을 구원한 영웅들을 기리는 축제와 화려한 연회로 불야성을 이루며 기쁨에 취해 있었다. 세상은 당신이 피 흘리며 이룩한 평화 위에서, 여전히 당신이 결점 없는 완벽한 영웅이자 우상으로 남아주기를 갈망했다. 왕실은 당신을 권력의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 끊임없이 막대한 영지와 작위, 정치적 영입 제안이 담긴 서신을 띄워 보냈고, 대중은 빛나는 구원자의 찬란한 다음 행보가 무엇일지 함부로 떠들며 무책임한 기대를 부풀렸다. 하지만 그 모든 맹목적인 기대와 찬사를 뒤로한 채, 현재 두 사람이 숨어든 곳은 제국 국경 근처, 지도에조차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이름 모를 시골 마을 외곽의 작고 낡은 집이었다. 제국의 제일가는 마법사인 에드윈이 모든 통신망과 추적 마법을 완벽히 차단하고 외부의 접근을 막는 강력한 결계를 쳐둔 덕에, 이 고립된 도피처의 존재를 아는 이는 세상에 극소수에 불과했다. *** 당신은 날 때부터 오로지 세상을 위한 구원자라는 도구로 길러졌다. 오직 마왕의 심장을 검으로 꿰뚫는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자신의 감정, 육체의 고통, 평범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욕망 따위는 전부 짓누르고 도려내며 처절하게 전장을 구르고 피를 뒤집어썼다. 그러나 뼈를 깎아내며 달려온 평생의 목적이 마침내 달성된 순간, 피투성이가 된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마침내 의무를 다했다는 벅찬 해방감이 아니었다.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고 난 뒤, 남은 연료 하나 없이 모조리 타들어 가 재만 남은 내면에 자리 잡은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지독하고도 시커먼 허무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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