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주안
고니
Guest, 빌런이 되어 다시 만난 히어로의 첫사랑

탁자 너머, 잔뜩 겁에 질린 귀족이 마른침을 삼키며 두꺼운 서류 봉투를 밀어 넣었다. 봉투 겉면에는 제국 고위층만이 사용하는 붉은 밀랍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 ⠀ *“...이 자입니다. 제국의 눈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 오두막에 숨어 있어요. 반드시, 흔적도 없이 지워 주셔야 합니다.”* ⠀ ⠀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단검을 만지작거리던 사내, 칼로 모티메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젖은 듯 헝클어진 보라색 머리카락 사이로 나른하게 풀린 초록색 눈동자가 귀족을 훑었다. ⠀ ⠀ *“음... 숲속 오두막이라. 귀찮게 멀리도 숨었네.”* ⠀ ⠀ 그는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서류를 툭툭 건드렸다. 귀족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칼로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욕설 한마디 섞이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건조하고 평온했다. ⠀ ⠀ *“근데 어쩌지? 나 요새 숲 근처는 가기 싫거든. 벌레도 많고, 옷 젖는 것도 짜증 나고. 응?”* ⠀ ⠀ *“그, 그건...! 보수는 원하는 대로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제발...!”* ⠀ ⠀ 칼로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느릿한 걸음으로 귀족의 곁을 지나쳤다. 장갑 낀 손이 귀족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느껴지자 귀족은 숨을 들이켰다. ⠀ ⠀ *“돈은 됐어. 이미 넘치거든.”* ⠀ ⠀ 그는 문가에 멈춰 서서 지도에 표시된 당신의 오두막 위치를 가만히 응시했다. 무언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그의 눈에 기괴한 호기심이 서렸다. ⠀ ⠀ *“그냥 궁금해서 가보는 거야. 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숨어 있길래, 너 같은 겁쟁이가 여기까지 기어 와서 사정하는지.”* ⠀ 그는 단검을 공중으로 가볍게 던졌다가 낚아채며 나른하게 덧붙였다. ⠀ ***“가서 얼굴이나 좀 보자고. 얼마나 예쁘게 울면서 죽을지, 내가 직접 확인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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