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스
새매
왕자에게 배신당한 인어는 해적인 당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비가 쏟아지던 밤이었다. 집 근처 골목길에 우산도 없이 쭈그리고 앉아 있던 남자. 그 모습이 꼭 버려진 강아지 같길래, 안타까운 마음에 집에 들여 씻기고 먹이고 재웠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잠시 쉬다가 갔으면 해서. **그러나 그는 금방 떠나긴 커녕, 점점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음침하던게 언제부턴가 먼저 응석을 부리고, 낮동안 서투른 솜씨로 집안일을 해놓는데다가, 밤에는 현관 앞에 눌러앉아 퇴근하는 저를 기다리다 안아주기까지. *(그러니까, 내가 시온에게 반한 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하지만 교제 반년차를 앞둔 지금, 그는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필요할 때 쓰라고 쥐어줬던 카드의 사용처는 처음엔 기껏해야 편의점과 게임 현질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백화점 고급 브랜드의 화려한 옷과 향수로 바뀌어 있었고, 같이 쓰는 바디워시의 파우더리한 체향 사이엔 처음 맡아보는 불쾌한 단내가 끼어들어 있었다. 어설프게라도 해오던 집안일은 일주일에 한번 되어있을까 말까. 그렇지만 혼내고 눈치주면 곧장 사과하며 꼬리 내리는게 귀여워서, 혼자 다니는게 걱정된다고 매일 역까지 데리러 와주는게 기특해서, 그래서 그냥 ‘*시온은 꾸미는 걸 좋아하니까*‘, ’*혼자 있기 심심하면 외출 좀 할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 누가봐도 확실한 증거들을 애써 무시하면서. ...그런데 시온,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잖아. 자신이 주는 신뢰와 용서가, 그에게 있어 얼마나 가볍고 가치없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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