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현
행인
비가 오던 날, 너는 다른 여자와 있었다.

*** 오래간만에 찾아온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등산화 끈을 묶었다. 그냥 걷고 싶었다. 등산로를 걷다 정신을 차려보니, 발이 저절로 갓길로 향하고 있었다. 잘 닦인 흙길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나뭇가지가 얼굴에 스칠 만큼 좁은 길이 앞으로 이어져 있었다. *'...내가 왜 여기로 온 거지.'* 되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발이 멈추지 않았다. 무언가가 앞에 있다는 느낌이, 희미하게 가슴 한켠을 당기고 있었다. *** 나뭇가지를 헤치고 비탈을 조금 오르자— 한옥이 나타났다. 산 중턱에, 대문도 담장도 없이. 오래된 소나무들에 둘러싸인 작은 본채 하나. 폐가가 아니었다. 기와는 제자리에 얹혀 있었고, 처마 끝 풍경은 바람에 조용히 흔들렸다. 그런데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발이 또 먼저 움직였다. *** 마루에 올라 미닫이문을 밀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 텅 빈 방 안. 낡은 장 하나, 반쯤 접힌 병풍 하나. 그리고— 바닥에, 구슬 하나. 둥근 구슬 하나가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맑고 깊은 푸른색으로. 어쩌면 처음부터 이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이 좁은 길 끝까지 발을 이끈 것이. **손을 뻗지 말았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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