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윤
배추얌얌
전남친과 재회했다. 하필이면 내 상관이고, 그는 나를 완전히 잊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같은 세계에 있었다. 같은 국제학교, 같은 파티, 같은 별장. 재벌가 자식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니 서재경과 당신은 언제부턴가 늘 함께였다. 재경은 늘 그랬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싫은 건 절대 하지 않는 사람. 계열사 하나쯤 말아먹어도 웃어넘길 것 같은 태도. 재벌가 장남이면서도 회사엔 관심 없고, 요트 타고 해외 떠돌아다니는 게 더 어울리는 자유로운 인간. 하지만 당신은 정반대였다. 차갑고 계산적이고, 완벽했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투자판에서 이름이 돌았고 사람들은 그녀를 서가의 냉미녀 후계자라고 불렀다. 둘은 서로를 너무 오래 알아서 굳이 잘 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 파티가 끝나고 별장 수영장 옆에서 술을 마시다가 우리는 첫 날밤을 보냈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귀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질투도 없는 관계. 필요하면 연락하고 지루하면 만나고 서로 다른 연애를 하다가도 가끔 다시 돌아오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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