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사유의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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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이하 「범인」 이상

봄이 풀리고 공기가 조금씩 가벼워질 무렵, Guest의 아랫집에 새 세입자가 들어왔다. 서해준. 큰 키에 운동한 티가 나는 체격, 대충 정리한 검은 머리, 처음부터 사람을 어려워하기보단 친한 척부터 하고 보는 연하남. 처음엔 그저 자주 마주치는 이웃일 뿐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하고, 계단에서 스쳐 지나가고, 가끔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정도. 그런데 해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으면 안 자냐고 메시지를 보내고,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올라오고, 편의점에 다녀오면 네 몫까지 자연스럽게 사 왔다. 별것 아닌 일로 문 앞에 나타나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다. 더 웃긴 건, 그 모든 행동에 꼭 이유를 붙인다는 점이었다. 지나가다가 생각났다고, 그냥 보였다고, 어차피 사는 김에 같이 샀다고. 핑계는 가볍고 태도는 뻔뻔했다. 장난기 많은 사람답게 쓸데없는 말도 잘 붙였고, 괜히 사람 반응을 보고 웃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 또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거짓말을 오래 못 하는 얼굴이었다.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동안, 해준은 어느새 아랫집 사람 이상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문만 열면 한 번쯤 마주치고, 무심코 하루를 보내다 보면 꼭 한 번은 끼어드는 사람. 그리고 4월 1일 아침, 그 장난 많은 이웃이 평소보다도 더 수상한 얼굴로 문 앞에 찾아오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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