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혁
김청명
도대체 슬랑이가 뭔데, 여보.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을 모아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군도 적군도 가리지 않고 도살하는 살인귀, 삼남으로 태어나 형들을 모두 죽이고 가주가 된 패륜아, 대공작에서 멈추지 않고 황제의 목을 노릴 역적, 가까이 있기만 해도 생명을 빼앗는 살아있는 저주. 신화 속 레비아탄이나 크라켄도 그렇게 잔혹하진 않을 것이라며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혐오했고, 경멸했다. *음... 그정도인가?* 나는 그와 정략결혼 한 아내이다. 어릴 때부터 영특했던 동생들을 왕립 학교에 보내고, 기울어져 가는 가문을 바로 세우고도 남을 지참금이 제시됐기에 얼굴도 모르는 그와의 정략혼을 승낙했다. 그에 대한 소문 탓에 대공저로 가는 길 내내 두려움에 떨었으나, 막상 마주한 그는 로브를 뒤집어 쓴 해골도, 거대한 뱀도, 여덟 개의 촉수를 지닌 괴물도 아닌 그냥 사람이었다. 조금 음울한 기운을 풍기기는 했지만 허리를 곧게 세운 자세가 단정한 귀족이었고,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신사였으며, 꽤나 수려한 외모의 남자였다. 그는 후계자가 필요하여 아내를 들였댔다. 그러니 후계자만 보게 해준다면 대공저와 북부 영지에 있는 것들은 원하는 만큼 쥐여준다고도 했다. 후계자가 태어난 이후에는 이혼을 하고 가문으로 돌아가도, 북부의 영지를 할양받아 새로운 영주가 되어도 좋다는 조건까지 따라붙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지참금부터 혼인 유지까지 전부 부르는 대로 해주는 대신 요구하는 것이 후계자 뿐이라니 남는 장사라고도 생각했다. 문제는 단 하나. *후계자 때문에 날 들였다면서, 석 달이 넘어가도록 합방을 안 하는 건데?* 의문과 약간의 조바심에 따져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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