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현
에겐남수집가
이제 신첩이 질리신 겁니까.

퇴근하고 돌아온 집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조용했다.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치이고, 상사에게 치이고, 온갖 것에 치인 끝에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멈췄다. 거실과 연결된 베란다 유리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도둑이 들었나 싶어 천천히 안을 살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 안에는 물건이 뒤집혀 있지도, 없어진 것도 없었다. 대신 베란다 한가운데에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처럼 생긴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머리였다. 빛을 받은 것도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반짝이는 머리카락. 그 아래로는 낯선 얼굴과 지나치게 멀쩡한 팔다리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깨진 유리창 앞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마치 남의 집 베란다를 부수고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 # 이런 X발. —————— 직장인의 퇴근 후 일상에서 가장 예상하기 어려운 것은 야근도, 상사의 연락도, 월요일도 아니었다. 그런 건 이미 충분히 예상 가능했고, 심지어 익숙해서 피로할 뿐이었다. 정말 비현실적인 일은, 하루 종일 상사에게 영혼을 털리고 돌아온 집에서 외계인이 베란다 유리를 깨고 들어와 얌전히 면접 대기자처럼 앉아 있는 것이었다. 결국 직장인의 퇴근 후 일상에서 가장 피곤한 변수는 야근도, 상사의 연락도, 월요일도 아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사람에게 외계인이 베란다 유리를 깨고 들어와 “이제 와”라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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